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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읽고/book

골든 아워(이국종)와 검사내전(김웅)

얼마 전 이국종 교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골든 아워를 읽었다. 골든 아워를 읽은 뒤 연달아 읽은 책은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 두 책 모두 작년에 발간된 책 중 많은 추천을 받은 책으로 언뜻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히 많은 차이점이 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에 대해서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지만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검사내전은 현역 검사인 김웅 검사의 책으로 (생활형) 검사 시절 겪은 일들과 생각들에 대해 쓴 책이다. 영화 제목인 검사외전을 패러디한 것 같은 책 제목과 심플해 보이는 책 표지에서도 느껴지는거지만 '검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엄숙한 검사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책이다. 검사 생활 동안 생긴 일들에 대해 하드 보일드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적절히 위트있게 표현한 책으로 여러 드립을 좋아하는 나에겐 예상 밖의 재미를 준 책이었다. 


골든 아워는 아주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로 중증외상분야에서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군분투라는 표현은 부족한 것 같지만. 드라마 제목이기도 했던 골든 타임은 맞지 않는 표현으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골든 아워가 맞다고 한다. 분량은 골든 아워는 2권, 검사내전은 1권으로 두 권 모두 전반적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다.


두 책을 연달아 보지 않았다면 굳이 묶어서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들은 아닌 것 같다. 공통점이라고는 전문직에 있는 두 명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적은 책일 뿐인 것 같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느껴졌는데 두 사람 모두 어마어마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떠한 위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닌, 생활형 검사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낯설게 느껴지지만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사는 듯한 이국종 교수가 그런 사명감으로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도 특이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거나 나쁜 사람들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되었다는 진부한 표현들이 보이지 않아 특색 있었다. 이제 이국종 교수가 짊어진 사명감은 '정경원에게' , 정경원 교수가 외상센터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것이겠지만.


두 책 간 차이점도 많은데 최전선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있는 이국종 교수의 글이 각종 드립을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도 유머러스한 사람은 아닐테고. 책 초반부에 소설가 김훈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만큼 김훈처럼 짧고 건조한 문장이 주를 이룬다. 건조한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해 주지만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 메모 챕터에 해당하는 글들은 간결한만큼 여러 상황이 상상되어 그만큼 더 가슴아프기도 하다. 회사 도서관에 있는 골든 아워를 보면 1권에 비해 2권을 빌리는 사람들이 얼마 없는 것 같은데 이런 답답함을 참기 어려운게 아닌가 싶다. 김웅 검사의 각종 드립은 딱 내 취향인데 스탠 리, 플래시, 아제로스, 축구 드립 등이 이어진다. 검사라면 대중 문화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이 분은 나처럼 각종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듯?


이국종 교수는 티비에서 본 적도 있고, (초청) 강연도 한 번 들은 적이 있고 골든 아워를 읽은 것도 있어서 내가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건지 가물가물하긴 한데 현 시스템에 불만이 매우 많으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헬기를 띄운다는데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민원을 받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지... 외상센터 구축에 대한 이야기나 아덴만 작전 비행기 렌트 관련 이야기를 들으면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다. 내가 들은 다른 강연에서는 장비 이야기도 많았지만. 


반면 검사내전에서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매우 큰 불만은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만은 있긴 하지만 이국종 교수처럼 들이 받는 스타일은 아니 니니까.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확실한 목적이 있는 곳과 51:49가 많은 분야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검사내전에서 다소 불만스러운 점은 중반부까지는 여러 실제 사례를 들고 와 재밌고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후반부에 있는 여러 시스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그 전까지 있던 내용과 다른 책에 있는 글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치 참여에 대한 부분에서 나랑 관점이 다르다는건 둘째 치고 ,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서인지 글이 잘 안 읽혔다.


2018년에 읽은 책이 40권 정도 되는데 2019년에는 20일동안 읽은 책이 5권. 연초 페이스는 좋지만 올해 회사 일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이런 속도로 책을 읽기는 힘들 듯.


검사내전의 한구절이 자주 생각난다

"난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중2병마냥 터프가이나 아웃사이더처럼 구는 것은 아니고 그냥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성격일 뿐이다. 나름 성실하지만 일만 하는 것을 불신하고 늘 게으른 것을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