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모 산은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려보는 곳이다. 자바 섬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대부분 수라바야를 통해 가는 곳이지만 난 수라바야를 포기하고 족자카르타 -> 브로모 -> 발리 투어를 택했기에 족자카르타에서 출발하였다. 족자카르타에서 오전 9시에 상당히 불안하게 느껴지는 승합차로 출발하여 브로모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브로모 아래 있는 여행사에서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미팅을 했다.
여행사라고는 했지만 그리 거창한 곳들은 아니고 일반 가게 수준들이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브로모에서 일출을 보고 다시 발리로 출발하게 되는데 발리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이니 시간 여유가 별로 없다. 지프를 이용해 몇군데 돌아볼거냐. 아니면 천천히 걸어서 볼거냐였다. 난 걷는걸 좋아하기에 걷는다고 했고, 일본&아일랜드 친구는 지프, 호주 커플은 지프를 이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내일 일을 결정한뒤 다시 승합차를 타고 브로모산을 올랐다. 상당히 가파른 길들로 일본 친구와 이니셜디에 나오는 코스 같다는 등의 얘기를 하며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올라가는게 불안했다. 이 곳에서 좀 괜찮은 상태의 차는 발리에서 딱 한 번 타봤고 대부분 위태위태한 수준의 차들을 주로 탔었다. 이거 손으로 밀면서 올라가야 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까지 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숙소에 도착.
밖을 내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칠흙같은 어둠...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때 바로 옆에 브로모 화산이 보일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일단 이 브로모화산 근처에 있는 숙소에 묵고 내일 일출을 보게 됐는데 숙소는 내가 인니에서 묵었던 곳 중에선 괜찮았던 수준...문제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인니에서 온수가 나오는 숙소에 묵어본적이 거의 없지만 이 곳만은 온수가 필요했다. 올라오며 동네 사람들을 보니 두툼한 담요를 하나씩 두루고 있어서 또 특유의 추위에 대한 엄살인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리고 보니 정말 추웠다. 인니에서 딱 한 번 추웠다고 느꼈던 곳이 바로 브모로. 원래는 온수가 나오는 곳 같았는데 보일러가 고장났는지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무척 아쉬웠다.
같이 온 일행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로는 축구 이야기...-_-; 아일랜드 친구가 일본 친구한테 일본이 축구 잘 한다는 얘기를 하니 일본 친구가 한국이 더 잘한다고 했다. 난 '일본이 더 잘한다'는 말은 물론 하지 않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_-; 물론 나중에 MLB 얘기할때는 이치로가 뛰어나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이 곳에서 닭(Ayam)을 시키면 대부분 1/4마리만 나와 양이 부족할때가 많았는데 닭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또 시키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소 배고픈 상태였지만 다음날을 위해 일찍 취침....더블룸에 혼자 묵게 되었는데 좋은 선택이였다. 무척 추워지만 옆 침대에 있는 담요까지 두개를 두르고 잘 수 있었으니..
잘려고 누웠는데 누가 문을 두들긴다. 이 곳 사람인데 내일 시간이 부족하니 걸어가지 말고 지프를 이용하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두군데지만 걸어가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해서 얼떨결에 승락하게 되었다. 결과를 생각하면 잘한 일.
다시 잘려고 했지만 인니에서의 밤 중 최악이였다. 추운건 둘쨰치고 계속 가위에 눌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옆에서 사람 말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이 곳에서 사고난 사람이라도 있었기 때문일까?
숙소의 모습
오전 3시 30분,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지프를 기다렸는데 지프를 기다리며 옆에 있던 티비를 보니 한국영화 엔딩 크레딧이 보였다. 제목은 뭔지 못 봤는데 '2000년 봄 창립작품?' 어떤 영화일까? 그때는 반가우면서 무척 궁금했는데 아직까지 어떤 영화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어서 검색을 해서 알아내야 할 듯. 한국영화다~라고 쭝얼거리며 기다리던 중 지프가 한 대 도착했다. 일본, 아일랜드 친구가 타길래 같이 타려고 하니 난 따로 예약해서 다른 차.... 다른 차에 타니 외국 사람들은 없고 인니 커플만 두쌍있다. -_-; 커플 두쌍과 남자 솔로 한 명은 별로 좋은 조합은 아무래도 아닌듯.
숙소에서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 전망대 근처에 내렸다. 어김없이 많은 가게들...옷파는 곳도 많은 편이였는데 이 곳 추위를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반팔+니트+가을자켓을 하나 입었는데도 상당히 추운 편이었다. 내가 춥다고 느낄 정도면 현지인들에겐 정말 죽을 맛이겠지.
브로모 화산 주변 모습. 분지의 높이가 해발 2000m를 넘는다.
전망대는 상단에 위치한 Gunung Pananjakan 주변에 있다.
빠난자칸산 전망대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닥불을 피워놓은 사람들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어떤 고등학생 정도 되보이는 남학생 한명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왠지 애니콜 같아 보여서 근처에 가보니 메뉴에 한글이 보였다. 인니에 같이 온 친구가 5일만에 다른 화산(Gunung Papandayan)에서 화상을 입고 한국으로 돌아가 혼자 여행 중이였는데 친구가 떠난지 5일만에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아버지가 옆에 같이 계셨는데 인사를 건네며 생각해보니 5일만에 써보는 한국말... 수라바야에 공장이 계신 분인데 휴일을 맞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브로모 산에 오셨다고 하셨다. 혼자 여행중에 만나는 한국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줄은 몰랐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높은 산이라 구름낀 날이 많아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찍는걸 좋아하지만 게으른 관계로 일몰은 많이 찍어도 일출을 그다지 찍지 못했었다. 간만에 찍어보는 일출을 이렇게 장엄한 곳에서 찍을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엔... 사람들의 환성 소리를 들으니 정동진에서 일출을 볼때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난다. 정동진엔 두번 가서 한번은 일출을 못 보고 한번은 봤는데 일출을 봤을때의 반응은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 곳의 일출은 어딜봐도 멀리까지 보인다. 답답한 건물들에 둘러쌓인...혹은 단순히 바다 너머에서 떠오르는 해와는 다른 느낌... 나와 해 사이에 있는 갖가지 볼거리들이 일출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모닥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일출 전의 모습들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장엄햇던 일출
일출을 바라보는 사람들
일출을 보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브로모 산이 보인다... 브로모는 상당히 특이한 지형으로 해발 2000미터에 분지가 있고 다시 그안에 분화구들이 있다. 그 중 회색으로 가장 눈에 띄는 화산이 바로 브로모.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브로모 화산 분화구 안에 신들이 산다고 믿으며 '성스러운 산'이라 부른다. 브로모 화산과 다른 화산들을 한눈에 바라보며 먼저 지형과 크기에 압도되었다. 여행 중 본 지형 중에 가장 특이한 지형이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분지내에 있는 화산... 문득 굉음 소리가 들린다. 멀리 세메루 화산 분화구에서 연기가 보인다. 이게 활화산이구나....1994년도에 폭발한 적이 있었던 만큼 활화산은 말 그대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때론 그 살아 있다는 점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사실 쓰나미의 영향이 이런 화산들까지 영향을 미쳐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다행히도 여행기간 내에 큰 위험은 (나에겐) 없었다.
굉음을 내뿜는 세메루 화산과 브로모 화산을 한 번에 바라보니 왜 이 곳 사람들은 브로모 화산을 더 경외시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제대로 뜨기를 기다려 전망 좋은 이 곳에서 사진도 제대로 찍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일출이 지난 뒤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갔는데 내가 타고 온 지프를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았다. 한참 헤매며 당황스러워 했는데 다행히 지프 속의 아저씨가 날 발견하고 불러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데 갔다 오신듯.
멀리 연기를 내뿜는 세메루 화산
분지 근처에 있던 마을
분지 내부 화산들의 모습
이 곳이 바로 브로모 화산
지프를 타고 분지 안 쪽, 모래바다로 내려왔다. 지프에서 내린뒤 브로모 화산 분화구까지 갈 수 있는데 조랑말을 타거나 걸어갈 수 있다.지프가 날 내려준 곳은 분화구에선 조금 많이 떨어진 곳으로 그리 위험할 건 없으니 충분히 근처에 내려줄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역시 이 곳 사람들의 주 수입은 관광수입이기 때문인지 조랑말 주인들의 수입을 위해 일부러 멀리 내려 놓는 듯. 뭐..이 정도는 현지인들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해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걷는걸 더 좋아하기에 빠듯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도시에서는 눈에 보이는 곳이라면 가까운 경우가 많은데 역시 완전한 평야이기 때문인지 보이지만 멀다. 분지 내의 평야, 모래바다를 건너갈 수록 정말 신기히다. 해발 2000미터 분지에 이런 평야가 있을 수 있다니..게다가 옆에선 유황연기를 내뿜는 분화구. 브로모 화산 분화구로 올라가는 계단 또한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급하게 올라갈려니 의외로 힘들다... 계단을 올라가니 화산 특유의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맡아 봤던 냄새. 얼마전 Gunung Papandayan에서 맡아봤던 냄새...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코를 찌르는 냄새이기에 정말 반가운 냄새는 아니다.
수많은 조랑말과 지프
반갑게 인사하던 현지인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브로모 화산이지만 이미 서 있는 곳이 해발 2000m가 넘는 분지
어떤 연인들의 실루엣
분화구 위로 올라가니 꽃을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분화구 안에 사는 신들을 위한 제물.... 분화구 옆에 올라 분화구를 내려다 보니 어쩌면 이렇게 올라가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더 신성하게 느껴지는게 아닐까 한다. 안에 신들이 산다고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신들이 산다면 바로 이런 곳에 살듯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곳에 사는 신들은 하데스에 더 가깝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겠지만 유독 브로모 화산만 색이 다르다는것 또한 특이하다. 충분히 신들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다. 역시나 촉박한 시간 때문에 서둘러 내려오며 만약 걸어서 둘러볼 생각이였다면 정말 난처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와 브로모, 둘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둘러보지 못 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듯 하다. 돌아오는 길 또한 많은 지프들 중 내가 타고 온 지프를 제대로 찾지 못해 고생했지만 같은 입장에 처했던 같이 온 인니 커플의 도움으로 빠듯하게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브로모 화산 분화구
또 다시 멀리 보이는 화산연기
브로모 화산 바로 옆에 있는 자위사원
숙소에 돌아와 보니 전날 밤엔 어두워서 알지 못 했지만 옆에 브로모 화산이 보였다. 바로 옆에 있는데 전혀 몰랐다니... 시간이 없어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발리를 향해 출발했다. 전날 밤에 올라올 땐 몰랐지만 역시 주변 풍경들도 멋지다. 해외여행 코스마다 느끼는 아쉬움은 당연한 얘기지만 떠날 떄 더욱 커진다. 내 평생 이 곳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슬프게도 그 답은 항상 부정적이다. 시간과 돈은 부족하고 아직 가보고 싶은 곳들은 많기 때문에... 그러나 누군가 여행 다녀왔던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냐고 물었을 때 먼훗날에도 그 답이 브로모가 될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내 머리속에서 답으로 망설여지는 장소가 될 것 같다.
숙소 옆에서 바라본 브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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